고창 웹진고창 인사이드 · 2026-09-10 · 읽는 시간 3분

만화서원,
고려 충신들의 절개가 500년을 지켜온 서원

고려 문충공 고경의 학문과 절의를 기리는 전통 서원

만화서원, 고려 충신들의 절개가 500년을 지켜온 서원
고창 현지 사진

고창의 신림면 만화마을에 위치한 만화서원은 제주고씨 고인상이 선조 문충공 고경을 주벽으로, 문영공 고용현과 화당 고만욱을 추배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에요. 서원이 지어진 역사가 오래된 만큼, 여기에는 고려 말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충신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역사의 증인이자 학문의 전통을 지켜온 공간이랍니다.

고려 문인으로서의 삶, 신동 고경의 이야기

서원의 전경
서원의 전경

문충공파 파조 고경은 고려말의 문신으로 호는 휴옹, 시호는 문충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정말 드라마틱해요. 이부상서 백연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다섯 살에 이미 시를 지었고 열두 살에 논어를 외워버렸대요.

당시에 그를 '옥산의 신동'이라고 불렀을 정도니까요. 단순한 조숙함을 넘어, 그는 진정한 학문의 정통을 몸으로 보여줬던 거죠.

충렬왕 18년(1292), 16세에 친명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어요. 그 이후 그의 인생은 고려 말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같은 당대의 거인들이 모두 고경을 자신의 예로 존경했다고 전해져요.

'충효가 동방의 으뜸이 된다'고 한 말이 바로 고경을 향한 평가였어요.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는 격동의 시대에 절개를 지킨 인물로서의 고경의 삶이 바로 이 서원을 있게 한 거랍니다.

함께 추배된 충신들의 흔적

건축 양식
건축 양식

만화서원에 함께 모셔진 고용현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에요. 그리고 고만욱은 고인상의 부친으로, 부모상을 당했을 때 예를 극진히 했다고 전해집니다. 한 서원에 모셔진 세 인물 모두가 그들 시대에 '충'과 '효'의 모범을 보여줬던 사람들이었어요.

이것이 바로 서원이 만들어질 때의 취지였을 거예요. 시대가 변해도, 그들이 지켜냈던 가치는 영원하다는 메시지를 담으려던 것이겠지요.

전통 서원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담다

만화서원의 구조를 보면 조선시대 서원의 전형을 볼 수 있어요. 사당은 3칸, 강당은 4칸으로 모두 팔작지붕이며, 동재는 4칸, 서재는 3칸이에요. 이 외에 외삼문 1동이 있어요.

각 건물이 정해진 역할을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배치라고 할 수 있어요. 건축 양식만 봐도 조선시대의 신분 체계와 학문의 위계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답니다.

500년의 세월이 이 건물들 위에 쌓여 있어요. 자연재해를 견디고, 역사의 흐름을 겪으면서도 고쳐 가며 남겨진 이 구조 자체가, 사람들의 신앙과 노력의 증거가 되어 있는 거죠. 방문했을 때 이런 생각으로 건물 하나하나를 보면, 느껴지는 게 훨씬 깊어질 거예요.

오늘도 이어지는 제향의 전통

문충고파 고씨 후손들은 전라북도 옥구군 옥산면의 염의원과 이곳 만화서원에서 고경을 주벽으로 모시고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어요. 단순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삶 속에서 그들의 절의와 학문을 추모하는 제사를 계속해왔다는 거죠. 이는 한국 전통문화에서 '추모'와 '경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만화마을의 전통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고창 관광정보센터에 미리 연락해 방문 일정과 안내 가능 여부를 확인해보세요.
고려의 충신을 추모하는 만화서원에서, 5백 년을 이어온 전통의 무게를 느껴보세요.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0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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