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웹진고창 인사이드 · 2026-09-10 · 읽는 시간 3분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조선시대 평지성이 담은 600년의 역사

1417년 축조된 무장읍성, 동학농민혁명의 첫 봉기지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조선시대 평지성이 담은 600년의 역사
고창 현지 사진

고창의 무장면에 자리 잡은 무장읍성은 조선시대 옛 읍성의 모습을 연구하고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어왔어요. 1417년 무장진의 병마사에 마을을 다스리는 기능을 주어, 당시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0,000여명을 동원해 만 4개월에 걸쳐 축조했대요. 길이 약 1.

2㎞의 평지성인 이 읍성은 6백 년이 넘게 고창의 땅을 지켜온 증인이랍니다.

평지성의 구조와 축조 기법

읍성의 성벽
읍성의 성벽

무장읍성의 가장 큰 특징은 산 위가 아닌 평지에 축조되었다는 거예요. 남문인 진무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어져 있으며, 동문터도 여전히 남아 있어요. 성 주위를 둘러싼 물길인 해자는 폭 4m, 길이 574m 정도로 그 흔적만 남아있지만, 당시의 방어 체계를 상상하게 해준답니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읍성의 둘레는 1,470척(약 441m), 높이는 7척(약 2m)이라고 해요.

이곳이 흙으로만 축조된 토성이라고 오랫동안 알려져 왔는데, 공사 때 성벽 동쪽 끝부분의 단면이 드러났을 때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어요. 성곽의 일부가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된 것이었거든요. 이런 기법적 발견들이 조선시대 축성 기술 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맞은 무장읍성

진무루
진무루

무장읍성은 오랜 시간 평온함 속에 있다가, 1894년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게 돼요. 그해 일어났던 동학 농민혁명은 이곳 무장읍성에서 맨 처음 봉기했던 역사의 현장이 바로 여기였거든요. 단순한 방어 시설을 넘어, 한반도의 급진적 변화가 시작된 장소가 되었던 거죠.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장읍성은 단순한 건축 유산을 넘어, 역사 교과서 속 현장이 되었어요.

당시 1415년에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이 읍성을 축조했다고 전해진대요. 그리고 그로부터 477년 뒤, 이 성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벌어진 거예요. 건축물로서의 무장읍성과 역사의 무대로서의 무장읍성, 두 가지 의미가 겹쳐진 곳이랍니다.

현재의 무장읍성 모습과 그 의미

현재 무장읍성은 성 안의 건물로 객사와 동헌이 남아 있어요. 조선시대 지방의 중심 시설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이 건물들은 복원이나 새로운 건축보다는, 남아 있는 그 모습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요. 오랜 세월을 거친 무장읍성 위에 서 있으면, 시간의 무게가 어떻게 돌 위에, 터 위에 쌓여 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거랍니다.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방문 전에 고창군 관광정보센터에 미리 연락해 현지 상황과 방문 가능 여부를 확인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조선시대 읍성의 옛 모습과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만나는 무장읍성에서 시간을 거슬러보세요.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0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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