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웹진고양 인사이드 · 2026-09-07 · 읽는 시간 3분

최영장군묘,
고려를 지키려다 처형된 명장의 무덤

고양 덕양구 대자동, 1388년의 역사가 담긴 고려시대 묘역

최영장군묘, 고려를 지키려다 처형된 명장의 무덤
고양 현지 사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가면 한 명의 역사 인물을 추도하는 조용한 묘역이 있어요. 최영 장군의 무덤인데, 이곳을 찾으려고 해도 도시 한복판이라 쉽게 눈에 띄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묘역은 고려 말기 가장 격동했던 역사의 순간을 품고 있어요.

명장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던 나라와, 그를 처형한 새 왕조의 갈등이 묘표 하나에 담겨 있는 셈이죠.

홍건적을 평정하고 왜구를 격퇴한 고려의 명장

묘역의 봉분과 석물
묘역의 봉분과 석물

최영 장군은 고려 말기의 명장입니다. 홍건적의 침입을 평정하고, 수십 차례나 들이닥쳤던 왜구의 침입을 막아냈어요. 흔들리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최영 장군이 없었다면, 고려의 역사가 훨씬 더 일찍 막혔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그의 뜻과 달랐습니다. 명나라에서 철령 이북의 영토를 빼앗으려고 하자, 최영 장군은 요동정벌 계획을 세워 압록강까지 진군했어요. 마지막 발악처럼 고려의 존망을 걸고 벌인 일이었죠.

그러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그의 계획은 무너집니다. 결국 1388년, 최영 장군은 이성계 등의 신진세력에 의해 처형되고 맙니다.

고려 말기 묘제의 전형을 간직한 봉분

최영장군묘 세부 전경
최영장군묘 세부 전경

현장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큰 봉분(무덤)입니다. 고려 말기의 전형적인 직사각 형태를 하고 있어요. 봉분 아래에는 2단으로 둘레석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건 무덤을 보호하기 위한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묘역은 최영 장군과 그의 부인 문화 유 씨(文化柳氏)의 합장묘로, 하나의 봉분 안에 두 분이 함께 안장되어 있어요.

묘역 곳곳에 놓인 석물들을 살펴보면 시대의 변화가 느껴져요. 봉분 정면 왼쪽에는 묘표가, 오른쪽에는 무민공 충혼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봉분 앞에 놓인 혼유석·상석·향로석·문석인 같은 돌기둥들은 모두 1970년대에 새롭게 추가된 것들이에요.

옛 석물과 새 석물이 섞여 있다는 건, 이 묘역이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관리되어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역사 현장

이 묘역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한 명장의 무덤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려시대의 묘제가 일부 남아 있어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몇백 년이 지난 지금도 고려 말기 묘 문화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죠.

현장에 서서 묘표를 읽고 봉분을 바라보면, 단순한 돌과 흙의 모임이 아니라 역사의 무게가 느껴져요. 이곳에서는 '고려를 지키려다 처형된 명장'이라는 한 문장의 의미가 정말 크게 다가옵니다. 역사 여행을 좋아하신다면 한번 들러볼 만한 장소라고 생각해요.

1388년최영 장군이 처형된 해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정보

최영장군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 70-2에 자리하고 있어요. 조용한 주택가 산자락에 있어서 찾아가실 때 미리 위치를 확인하고 가시는 게 좋습니다. 이곳은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지만, 고인을 추도하는 공간이라는 걸 기억하고 존중 있는 관광 매너를 지켜주시면 좋겠어요.

체크리스트
고려 말기 직사각 형태의 전형적인 봉분
합장묘로 조성된 최영 장군과 부인의 무덤
옛 석물과 새 석물이 함께하는 묘역
1970년대에 정비된 혼유석·상석·향로석
도시전설 팁
별도의 이용요금·이용시간·휴무일이 확인되지 않았어요. 개방되는 시간대나 방문 조건 등이 있을 수 있으니, 방문 전에 고양시 관광 안내나 현지에 직접 문의해보시길 권해드려요.
고려를 지키려다 처형된 명장의 무덤.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그곳에서 고려 말기의 시대정신을 만나보세요.
#최영장군묘#고양역사#고려시대#덕양구#역사유적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7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함께 둘러보면 좋은 지역전국 118개 지역 인덱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