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웹진구미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2분

동방의 이락이 되길 바라며,
동락서원의 600년

여헌 장현광을 기억하는 낙동강변 서원, 성리학의 상징

동방의 이락이 되길 바라며, 동락서원의 600년
구미 현지 사진

낙동강변의 언덕 위에 서 있는 동락서원. 서원의 이름, '동락'의 의미를 아실까요? '동방의 이락'이라는 뜻인데, 이락은 주자학의 상징이에요.

그렇다면 동락서원을 세운 사람들이 얼마나 큰 뜻을 품었는지 느껴지시나요?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이 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근원이자 상징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의정부 우참찬, 그리고 병자호란의 장현광

중정당과 서원의 중심 공간
중정당과 서원의 중심 공간

장현광은 누구였을까요? 그는 인조 때 의정부 우참찬을 역임한 문관으로,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했어요. 그런데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 학자는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아 전장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국가의 위기 앞에서 행동하는 선비였던 거예요. 이런 학문과 실천이 함께한 삶이 후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줬는지, 서원의 이름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장현광이 서거하자 1655년, 그의 제자들이 선생이 학문을 가르쳤던 부지암정사에 묘우를 지어 서원 체제를 갖추고 위판을 봉안했어요. 처음엔 부지암서원이라 불렸던 이 서원은, 1676년 나라에서 현판을 받으면서 동락서원이 되었고, 사액서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는 수난을 겪게 돼요.

그리고 1932년에야 묘우를 복원했고, 1971년에 서원 건물 전체를 다시 세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손으로 심은 은행나무, 400년을 지키며

장현광 선생의 위패를 모신 경덕묘
장현광 선생의 위패를 모신 경덕묘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인 경덕묘, 강당인 중정당, 동재 윤회재, 서재 근집재, 외삼문인 준도문이 있어요. 이 중 중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쪽에 방을 두었는데, 이 마루가 스승과 제자들의 회합 장소였다고 해요. 준도문 바로 앞에는 400여 년 묵은 은행나무가 서 있습니다.

이 나무는 장현광 선생이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어요. 나무를 통해 선생의 시대가 조금씩 더 가까워진다는 느낌, 그 감정이 동락서원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도시전설 팁
동락서원은 현재도 향사(제향)를 지내고 있는 살아 있는 서원입니다. 방문 시 예의를 갖춰 주시고, 제향 일정이 있으면 미리 확인해보세요.
동방의 이락이 되고 싶던 선비들의 꿈이, 낙동강변 돌 위에 서 있어요. 장현광의 시대, 그 정신을 만나봅니다.
#동락서원#장현광#성리학#낙동강#조선시대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함께 둘러보면 좋은 지역전국 118개 지역 인덱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