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웹진구미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2분

776년을 지켜온 산성,
금오산성의 이중 성벽

해발 976m 험준한 금오산을 감싸 돈, 고려 왜구 피난처에서 조선 전략 요충지까지

776년을 지켜온 산성, 금오산성의 이중 성벽
구미 현지 사진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해발 976m의 금오산은 영남의 명산으로 불려왔어요. 그리고 이 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돈 돌성, 금오산성이 있습니다. 이 산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내성, 계곡을 감싼 외성의 2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내·외성벽의 길이만 6. 3㎞에 이르러요. 정확한 축성 연대는 문헌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역사는 한반도의 위기와 함께 이어져왔습니다.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운 피난처

내·외성벽이 만나는 지점
내·외성벽이 만나는 지점

금오산성이 처음 지어진 건 고려 후기였어요. 당시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았거든요. 이에 인근 선산, 인동, 개령, 성주의 백성들이 금오산으로 피난을 나왔고, 이곳에서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게 된 것입니다.

단순한 요새가 아니었어요. 성 안에는 군량과 무기를 비축하는 군창까지 두었다고 해요. 정상부의 내성은 둘레가 무려 10리나 되었습니다.

조선시대로 들어서며 금오산성의 중요성은 더해졌어요. 1410년 태종 때는 국가 차원에서 성을 크게 고쳐 쌓았고, 임진왜란 때는 전략적 중요성이 재인식되어 선조 28년(1596)에 다시 개축했어요. 17세기 중반인 1639년(인조 17)에는 외성을 새로이 확장하는 공사를 시행해 현재의 2중 산성 형태가 완성되었습니다.

고종 5년(1868)에도 새로이 고쳐 지었으니, 약 776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손을 봐왔던 거예요.

남겨진 것들이 말해주는 역사

산성 내 문터와 건물 유적
산성 내 문터와 건물 유적

성 안에는 1개의 계곡과 여러 개의 연못, 우물이 있었으며 대혜창과 내성창 같은 창고, 군기고, 진남사란 사찰까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지금은 내·외성의 문터, 암문(적의 침입을 알 수 없게 만든 작은 성문)의 형체, 건물 터들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고종 5년(1868) 무렵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산성 중 수송 공비는 여전히 성을 지키고 있어요.

성벽이 험한 절벽인 곳엔 따로 벽을 쌓지 않아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도시전설 팁
금오산성은 금오산도립공원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정확한 방문 시간과 입장 정보, 산책로 안내는 방문 전에 공원 공식 사이트나 구미시 관광 안내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역사가 겹겹이 쌓인 산성을 거닐 때는 발걸음도 한 발 한 발이 의미가 있을 거예요.
고려 왜구의 약탈부터 임진왜란, 병자호란까지 한반도의 위기마다 이 산성은 백성들의 피난처였어요. 776년의 시간이 돌성에 새겨져 있습니다.
#금오산성#도립공원#산성#고려시대#구미관광지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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