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사(군산),
나라의 기둥이 되겠다는 뜻의 취성산 절
백제 시대부터 이어져온 금산사의 말사, 공민왕이 찾던 절

군산 서수면의 취성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상주사가 있어요. 금산사의 말사로 알려진 이곳은 1,400년을 넘는 역사를 지닌 사찰이에요. 절의 이름만 들어도 특별한데, '나라의 기둥이 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해요.
창건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놓아봤어요.
백제 시대부터 이어져온 취성산의 절
상주사는 신라의 혜공대사가 백제 무왕 7년인 606년에 세웠다고 전해져요. 다만 당시 이 지역은 백제 영토였던 만큼, 정확한 창건 시기와 배경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해요. 그렇더라도 1,400년을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취성산에서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해온 절이라는 것만으로도 이곳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어요.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며 지금에 이르렀는데, 특히 고려 공민왕 11년인 1362년에 승려 혜근이 중창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그 당시 절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이 절을 찾았던 한 왕의 이야기와 함께 남아 있어요.
나라의 기둥이 되다 - 공민왕과의 인연
고려 공민왕이 상주사를 찾아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전해져요. 이 방문이 인연이 되어 절의 이름이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이 흥미로워요. 본래 절의 이름에 쓰던 '머무를 주(住)'자를 '기둥 주(柱)'자로 바꿨다고 해요.
'나라의 기둥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겠다는 뜻이었을 것 같아요. 왕이 기원한 염원과 절의 이름이 한 번에 맺어지는 순간이었을 거예요.
전성기 때의 영광
상주사가 얼마나 큰 사찰이었는지는 남겨진 기록에서 찾을 수 있어요. 고려 말 당시 취성산 내에는 상주사에 속한 암자가 무려 9개나 있었다고 해요. 그것도 부족해서 스님만 해도 약 200명이나 되었다고 전해져요.
밥을 지을 때면 쌀뜨물이 아랫마을까지 내려갔다는 이야기는, 한때 이곳이 얼마나 번성한 사찰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지금 남은 유물들
현재 상주사에는 세월을 견딘 유물들이 남아 있어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삼존불 위 닫집에 조각되어 있는 용두(용의 머리)예요. 본래는 2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1기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약탈해갔다고 해요.
용마루 위에는 청기와가 두 개 얹혀 있고, 상단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11개의 용두가 놓여 있다고 해요. 용의 형상을 여러 번 배치한 이 장식들은 절의 격과 보호를 기원하는 전통적인 건축 요소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찾아가기
상주사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서수면 함안로 57-29에 위치해 있어요. 취성산 동쪽 기슭의 산사찰이므로 방문하실 때는 산길을 고려해 편한 복장으로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자료에서는 이용요금·이용시간·휴무일에 대한 정보가 확인되지 않았어요. 사찰 방문이 처음이시거나 특별한 시간대에 방문 계획이 있으시다면, 방문 전에 사찰로 직접 문의하시거나 군산시 관광 안내를 통해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길 권해드려요. 산사찰인 만큼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방문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요.
함께 둘러보면 좋은 주변
군산 서수면 일대는 취성산 계곡의 자연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지역이라고 해요. 상주사 방문을 중심으로 산책로나 인근 문화유산을 함께 둘러보는 코스를 짜보시면, 역사와 자연을 함께 누리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고려 왕이 기원한 나라의 기둥이 되겠다는 뜻의 절, 역사와 신앙이 담긴 공간이에요. 취성산 자연 속에서 만나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