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웹진광주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3분

일제강점기를 견딘 유일한 사찰,
남한산성 내 장경사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산성 안에서 만나는 역사 깊은 절

일제강점기를 견딘 유일한 사찰, 남한산성 내 장경사
광주 현지 사진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안에는 몇 개의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장경사입니다. 이 절은 이름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한 국가의 위기 속에서 태어났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에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남한산성 안의 대부분 사찰이 파괴되었지만, 장경사는 그 시련을 견디고 오늘까지 남아 있습니다.

남한산성과 함께 세워진 사찰

장경사 경내 전경
장경사 경내 전경

장경사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남한산성의 역사와 맞닿아 있어요.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북쪽의 후금(후일의 청나라)에 대비하기 위해 세워진 대규모 산성입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국가의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려던 시대였어요.

이때 벽암 각성스님을 책임자로 하여 전국에서 모인 승군(전쟁 같은 국가의 위기 때 조성되는 승려로 이루어진 군대)이 동원되어 남한산성을 축조했고, 장경사는 이 공사와 함께 지어졌습니다.

남한산성 안에는 처음부터 있던 망월사와 옥정사, 그리고 이 공사 때 함께 세워진 7개 사찰이 있었어요. 이들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었어요. 전국에서 올라온 승군이 머물 수 있는 거점이자, 산성 축조 이후에는 남한산성을 관리하고 지키는 역할을 맡던 곳이었습니다.

승군은 공사가 끝난 뒤에도 계속 이곳에 머물면서 승려이자 동시에 군인으로서의 이중 역할을 해왔던 거예요.

일제강점기의 시련, 그리고 생존

역사를 품은 사찰 건축
역사를 품은 사찰 건축

1907년, 상황이 급변했어요.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남한산성은 더 이상 필요한 군사시설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남한산성의 군사시설들이 파괴되었고, 승군이 주둔하던 사찰들도 대부분 함께 없어져버렸어요.

9개의 사찰 중 대부분이 이 시기에 파괴된 것입니다. 하지만 장경사는 기적처럼 이 시련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 절이 갖는 역사적 가치 중 하나예요.

이후 장경사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시련을 맞이했습니다. 1975년 화재로 큰 피해를 입게 된 것이에요. 하지만 이번에는 중단되지 않았어요.

절은 복구되었고, 지금까지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동문인 좌익문에서 북쪽 방향 망월봉 중간쯤에 위치한 장경사는, 산성의 제1암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교통 요지였던 만큼, 산성을 찾는 방문객들이 여전히 들르는 공간입니다.

도시전설 팁
장경사의 정확한 개방 시간과 입장 정보, 방문 시 예의 사항 등은 방문 전에 남한산성 공식 안내나 최신 자료로 확인해보세요. 남한산성 탐방 시 절의 위치와 접근 경로, 산책 동선도 함께 확인하고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일제강점기를 견디고 화재도 이겨낸 절, 장경사를 통해 남한산성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는지를 느껴봅니다. 광주 여행, 계속할게요!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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