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를 견딘 두 선비,
광양 신재서원
조선 사림의 역사가 담긴 광양의 서원
광양읍 신재로에 자리한 신재서원은 조선시대 사립 교육기관이자 지역 인물을 기리는 공간이에요. 서원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었어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는 곳이었거든요.
신재서원은 광양 현감을 지낸 정숙남이 두 명의 뛰어난 인물을 향사(추모하고 제사를 지냄)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산두와 박세후, 기묘사화의 그림자 속에서
신재서원이 기리는 두 인물을 알아야 해요. 먼저 최산두(1482~1536)는 호가 신재로, 광양 출신의 사림입니다. 태어날 때 백운산에 내린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특별한 인물로 여겨졌어요.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화를 입었지만,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과 사간원을 거치며 관직을 다했습니다.
박세후(1493~1550)는 호가 인재로, 본관은 상주예요. 그 역시 기묘사화의 피해를 입은 사림 중 한 명입니다. 진사과에 오른 후 별시 문과에 급제했고, 홍문관 박사,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등을 거쳐 광양 현감으로 임명되었어요.
광양 현감으로서 학문을 장려했고, 사마소(지방의 관립 교육 기관)를 건립하는 등 크게 유업을 일으켰다고 전해져요.
변곡점들을 지나온 신재서원의 역사
신재서원도 두 인물만큼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었어요. 정유재란(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두 번째 침략) 때 소실되었다가, 숙종 신미년(17세기 말)에 지역 사민이 중건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잔인했어요.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문을 닫게 되었거든요.
그러나 신재서원의 역사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습니다. 1977년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워졌어요.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며 그 가치를 증명해낸 셈이에요.
신재서원은 단순히 과거를 추모하는 공간이 아니라, 조선 시대 사림의 정신과 광양의 역사가 만나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기묘사화라는 역사의 파고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선비들의 정신이 신재서원에 담겨 있어요. 광양 여행, 계속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