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웹진경산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3분

원효대사가 창건한 반룡산,
반룡사에서 신앙의 역사를 읽다

신흥암에서 반룡사로, 조선 시대 대가람을 품은 절

원효대사가 창건한 반룡산, 반룡사에서 신앙의 역사를 읽다
경산 현지 사진

경산시 용성면 구룡산 자락(반룡산)에 위치한 반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예요. 이 절의 시작은 원효대사가 창건했을 때부터라고 전해져요. 우리는 이미 제석사에서 원효대사의 발자국을 만났는데, 반룡사도 마찬가지로 그의 정신이 깃든 곳입니다.

661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후, 절은 긴 세월을 걸어가게 되어요. 처음에는 아무런 이름도 없는 절이었다가, 고려 전기에 원응국사가 '신흥암'이라는 이름으로 중창하면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임진왜란, 그리고 부흥

조선시대 대가람의 흔적
조선시대 대가람의 흔적

신흥암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어요. 이는 경산 지역 많은 사찰들이 겪었던 공통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절은 다시 그 모습을 찾기 시작해요.

특히 인조 대부터 숙종 대까지, 약 60년 동안에 걸쳐 총 25개의 전각을 건립하면서 대가람을 이루게 됩니다. 이때 절의 이름도 '신흥사'에서 '반룡사'로 개칭했어요.

25개의 전각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단순한 건축 사업이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수공장인들, 승려들, 그리고 신자들이 함께 만든 커다란 문화 운동이었던 거예요. 절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경제, 문화 활동의 중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반룡사의 규모와 위상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에요.

화재와 복구, 그리고 오늘

반룡사의 건축 미학
반룡사의 건축 미학

그러나 조선 말 무렵, 화재로 인해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었어요. 25개였던 전각 중 대부분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반룡사에겐 큰 시련이었어요.

하지만 역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968년 절은 중창되었고, 이후에도 산식각과 용왕각 등을 완공하면서 차근차근 복구해나갔어요. 마지막으로 2018년에는 요사채를 신축했습니다.

오늘의 반룡사는 이런 복구 과정 속에서 여전히 신자들을 맞이하고 있어요.

문화유산, 그리고 신앙의 가치

반룡사가 특별한 이유는 그 안에 간직된 문화유산 때문이에요. 경상북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산 반룡사 화문면석 부재'가 총 10여 점이나 보관되어 있습니다. 화문면석이란 건축 부재로서, 섬세한 꽃무늬나 기하학적 무늬를 새긴 돌을 말해요.

이것들은 조선 시대 석재 공예의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당시 반룡사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지어졌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또한 1741년에 조성된 종형 부도 1기도 유존하고 있어요. 부도는 승려가 입적했을 때 화장하고 유골을 묻는 곳을 의미해요. 이 부도는 18세기 경산 지역의 불교 활동과 신앙의 깊이를 증언하는 유물입니다.

이런 문화유산들이 모여서, 반룡사는 단순한 기도의 공간을 넘어, 한국 불교사와 미술사의 중요한 증거지가 되어 있어요.

도시전설 팁
반룡사는 신자들을 위해 항상 개방되고 있습니다. 화문면석 부재나 부도 같은 문화유산을 자세히 보고 싶다면, 방문 전에 절에 문의해 안내를 받아보세요. 조선 시대 대가람의 웅장함과 신앙의 깊이를 느껴보는 시간이 될 거예요.
원효대사의 발자국과 조선 시대 대가람의 영광, 반룡사에서 만나봅시다. 경산의 신앙 문화유산, 함께 나누겠습니다!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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