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아픔을 딛고 일어선 사찰,
혜광사의 새로운 출발
왜색불교를 벗고 한국불교로 거듭난 절의 역사

경산시 삼북동 장산로에 자리한 혜광사는 1931년 창건된 사찰이에요. 하지만 단순한 창건 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이 절이 어떻게 지어졌는가, 하는 점이에요.
혜광사의 건물은 조선시대에 자인현의 객사로 사용되던 건물이었어요. 일제강점기에 일본 승려 '투현'이 일본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이 건물을 현 위치로 옮겨와, 일본식 사찰로 개축했다는 거죠. 그것은 단순한 건축 이전이 아니었어요.
한 국가의 식민지배 속에서 문화까지도 수탈당했던 그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왜색불교를 벗는 과정
흥미로운 점은 당시 이 지역이 풍수적으로 얼마나 명당이었는가 하는 거예요. 일본 승려 투현이 이곳을 택한 이유는 그것이 경산의 중심지였고, 풍수상 '연화부수형국(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의 명당자리'였기 때문이라고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문화유산이 되려고 했던 명당이 일본식 절이 되어버린 것이죠.
하지만 해방의 날이 찾아왔어요.
해방 후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 스님인 혜광스님이 이곳에 와서 주석하게 되어요. 혜광스님은 단순히 새로운 주지가 아니었어요. 그는 왜색불교를 타파하고, 대한불교 법화종단에 사찰을 등록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내 모 사찰에서 후불탱화를 모셔와 대웅전에 봉안했어요. 이 과정을 통해 혜광사는 명실공히 한국불교 법화종 사찰로 사격을 일신하게 됐어요.
쇠락에서 부흥으로의 여정
그러나 혜광사도 세월의 무게를 피해갈 수 없었어요. 시간이 흘러 절은 점차 쇠락해져갔고, 거의 폐사 직전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1975년에 찾아왔어요.
새로운 주지로 대한불교법화종의 원로 혜문스님이 부임한 것이에요. 혜문스님은 대웅전을 중창하고, 폐허가 되어가던 사찰을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어요.
사찰의 쇠락은 단순한 건물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것은 역사 속 상처를 안고 있던 절이,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과정이었어요. 혜문스님의 노력 덕분에 혜광사는 다시 한 번 생명력을 되찾았고,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어요.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낸 절의 이야기는, 경산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절, 혜광사에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만나봅니다. 경산의 또 다른 이야기, 계속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