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웹진익산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2분

한글의 소중함을 지킨 문학가,
이병기 선생의 생가

여산면에 자리한 국문학자의 선비 가옥

한글의 소중함을 지킨 문학가, 이병기 선생의 생가
익산 현지 사진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에 자리한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입니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으며, 안채, 사랑채, 헛간, 고방채, 정자 등이 남아 있습니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는 곳입니다.

수우재의 선비정신

선비 가옥의 안채
선비 가옥의 안채

이병기 선생의 사랑채는 '수우재(守愚齋)'라고 불립니다. 이 이름은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한다'는 뜻을 간직하고 있어요.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지는 곳입니다.

가옥 전체를 통해 조선시대 선비가 추구했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한글의 소중함을 지킨 국문학자

수우재 사랑채
수우재 사랑채

가람 이병기 선생은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여 일찍이 1930년대부터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했습니다.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어 한국 언어 문화를 정립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동했어요. 이러한 활동은 우리 국문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입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흥원경찰서로 끌려가 1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후 고향에 내려와 칩거하였어요. 해방 후에는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국문학을 가르쳤으며, 주요 저서로는 '국문학전사', '역대시조선', '가람문선' 등이 있습니다.

이병기 선생의 생가는 한글을 지킨 문학가의 정신과 조선 말기 선비 가옥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공간입니다.

도시전설 팁
정확한 개방 시간과 내부 관람 가능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세요. 문화재 보존을 위해 관람에 제한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글을 지킨 국문학자의 정신이 서린 집. 수우재에서 선비정신의 참뜻을 만나봅니다!
#익산문화인물#국문학자#선비가옥#여산면#한글보존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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