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웹진익산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2분

임진왜란 이전의 비석,
소세양신도비

왕궁면에 자리한 조선 중기 문인의 위상

임진왜란 이전의 비석, 소세양신도비
익산 현지 사진

익산시 왕궁면 화곡1길에 자리한 소세양신도비는 조선 전기의 문인 소세양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소세양은 본관이 진주이고 자는 언겸, 호는 양곡·퇴재·퇴휴당이었으며, 시호는 문정이었습니다. 이 비석은 비석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구성인 기단, 비신, 이수가 잘 갖추어져 있어 비석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며, 조각과 글씨의 서체가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의 귀한 비석

비석의 세부 조각
비석의 세부 조각

소세양신도비는 임진왜란 이전에 건립되어 현재 익산에 남아 있는 비석 중에서는 조성 시기가 빠른 편입니다. 보존 상태가 전반적으로 양호하지만, 기단석의 이수는 파손되어 교체하였습니다. 현재 진주소씨 익산회종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지역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조선 중기 관료의 삶

조선시대의 글씨
조선시대의 글씨

소세양은 1486년에 태어나 1562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1504년에 진사시에 급제했으며, 수찬에 재직할 때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복위를 건의하여 현릉에 이장하게 했던 사람입니다. 이후 영접사 종사관, 전라도관찰사, 판서, 우찬성 등의 관직을 거쳤어요.

하지만 윤임 일파의 탄핵을 받아 사직했다가, 조선 명종 즉위 후 다시 기용되어 좌찬성을 지냈고 사직한 뒤에는 고향인 익산에 은거하였습니다.

소세양은 사후 익산 화암서원에 배향되었고, 문집으로는 양곡집이 있습니다. 그의 신도비가 품고 있는 기단부의 정교한 조각과 귀한 글씨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 얼마나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 비석은 단순한 추모의 대상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정치·문화·미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도시전설 팁
정확한 위치와 접근 방법을 사전에 확인하고 방문하세요. 문화재 보호를 위해 방문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 남긴 아름다운 비석. 역사의 무게를 다시 느껴봅니다!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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