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재 정가신을 기리는 서원,
설재서원에서 만나는 학문의 전통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 영모재와 사당에 남은 유학의 흔적
서원은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으로,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되었어요. 설재서원은 설재 정가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정가신은 고려 문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으며 뛰어난 문장가였어요. 그의 학문과 품행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이 서원이 탄생했고, 지금까지 그 정신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시대를 거치며 승격되고 이전한 서원
설재서원은 숙종 14년 노안면 금안동에 처음 세워졌어요. 이후 숙종 38년에 향사우로 승격되었고, 지역민 교육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확대하게 되었어요. 경종 3년에 영안마을로 이전하면서 강당인 영모재를 새로 지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건물이에요.
이전에 따른 재건은 단순한 장소 이동을 넘어, 새로운 역할과 정체성을 정립하는 과정이었던 거죠.
여러 세대를 추모하는 9개의 위패
서원 내에는 현재 9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어요. 숙종 19년인 1693년에 효자 정려를 받은 정식부터, 경종 3년인 1723년에 신장과 정심을, 1953년에 정상·정여린·정란을, 그리고 1988년에 정초·정눌의 위패를 추가하였어요. 이렇게 여러 세대가 추가된 것은 설재서원이 단순히 한 인물을 추모하는 공간을 넘어, 지방의 여러 유학자들을 기리고 그들의 전통을 계승하는 역할을 했다는 증거예요.
건축과 공간 활용의 지혜
서원의 면적은 207평(684㎡)이며 건물의 구성은 사당, 강당, 내삼문으로 되어 있어요. 외삼문 대신 4각 대문이 강당 측면에 건립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해요. 내삼문 좌우로 담장을 설치하여 제향 구역인 사당과 강당구역으로 분리시켰는데, 이것은 신앙과 교육의 공간을 명확히 구분하면서도 하나의 통일된 정원으로 만들려는 설계 철학이 담겨 있어요.
강당인 영모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중앙에 2칸의 대청을 두고 양측으로 온돌방을 꾸몄어요. 이러한 구조는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그리고 학문 강론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에요.
고려 문신 정가신의 학문 정신이 남은 설재서원, 영모재에서 조선시대 유학의 전통을 감흭해봅니다. 나주 여행, 계속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