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이항복선생묘,
'오성과 한음'의 오성이 잠든 곳
임진왜란의 영웅, 영의정 이항복의 묘역과 신도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위치한 이항복선생묘는 조선 중기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던 인물 중 한 명의 안식처예요. 아마 '오성과 한음'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바로 이항복 선생이 '오성'이랍니다.
오성군(이항복)과 한음(이덕형)이 벌이던 고사성어나 전설들은 지금까지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고 있을 정도예요. 가산면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한 이 묘역은 조선 시대 예술성 높은 석물들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영의정에 오른 백사 이항복의 관직 경력
이항복 선생은 1556년에 태어나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관료로 활약했어요. 1580년에 알성문과에 급제했으니, 30대 초반부터 중앙 정계에 진출한 것이죠. 1589년에는 예조정랑으로 정여립의 모반 사건을 다스리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어요.
그 뛰어난 능력과 충성심이 인정되어, 오성군으로 봉해졌고, 이후 형조판서, 병조판서, 좌의정, 우의정을 거쳐 마침내 영의정(국가 최고 관직)에 올랐어요. 끝내 오성부원군의 작위를 받으며 영광스러운 정치 생활을 마감했답니다.
이항복의 가계도 명족이었어요. 묘역 앞에 보면 권율장군의 딸이셨던 부인 안동권씨와 함께 쌍분을 이루고 있어요. 권율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의 명장으로 알려진 인물이니, 이항복은 그 위대한 장군의 사위였던 셈이에요.
신도비와 묘역 석물의 예술성
묘역 앞의 비탈 아래에는 이항복을 모신 영당이 있으며, 영당 오른쪽에는 효종 3년(1652년)에 건립된 신도비가 서 있어요. 이 신도비는 옥개방부형(지붕 모양의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의 모습으로 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크기가 장대하여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요. 단정한 처마 뻗침과 화려한 장식의 받침돌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서, 17세기 묘제 석물의 예술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답니다.
이러한 석물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당대의 기술력과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에요. 조선 중기 묘제 문화의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고 있답니다.
역사와 만나는 순간
이항복선생묘를 찾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에요. 임진왜란 이후 혼란한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운 명신의 흔적을 직접 밟으며, 17세기 조선의 정치와 문화를 몸으로 느끼는 경험이 될 거예요. 가산면의 한가로운 길에서 만나는 이 묘역은, 우리가 잊고 있던 조선 시대 명신의 삶을 다시 불러일으켜 줄 것이랍니다.
오성과 한음의 오성이 잠든 곳입니다. 조선의 영의정 이항복을 추모하며 조선 시대의 무게를 느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