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덕동문화마을의 조선시대 고택 3채,
시간이 켜켜이 쌓인 집
여강 이씨 집성촌에서 만나는 거북 모양 배치의 애은당고택과 사우정고택, 별장 용계정

포항에서 문화를 찾는다면, 시간이 멈춰 있는 마을을 먼저 찾아가는 게 좋아요. 덕동문화마을은 임진왜란 이후 여강 이씨 일족이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이에요. 이곳에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실제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고택 3채가 남아 있는데, 그중 특히 주목할 만한 건 건물을 배치한 방식에까지 철학이 담겨 있다는 거예요.
오늘은 애은당고택, 사우정고택, 용계정 이 세 건물의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거북을 닮은 집의 배치, 애은당고택
애은당고택은 조선시대 초기 가옥으로, 원래는 문신 정문부가 임진왜란을 피해 손녀사위 이강에게 물려준 재산의 일부예요. 이 집의 가장 특이한 점은 건물 배치가 거북 모양이라는 거거든요. 사실 건축물에서 '거북 모양'이라고 하면 풍수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애은당은 그걸 실제 구조로 구현해놨어요.
거북의 앞발이 닿을 자리에는 별당과 방앗간을, 머리 방향인 앞면에는 누에를 치던 잠실을, 꼬리 부분에는 화장실을 배치했대요. 이런 배치법을 보면 집을 지을 때 단순히 편의성만 생각한 게 아니라, 풍수와 실생활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했던 선인들의 지혜가 느껴져요.
조선 중기 양반 가옥을 공부하는 건축학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당시 사대부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누에 양잠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혼자 몸을 씻을 때 어디를 사용했는지—이 모든 게 건물 배치에 녹아 있거든요. 한옥 투어를 좋아하신다면, 건축 공부를 좋아하신다면 이런 세부사항을 눈여겨보며 둘러보시는 게 정말 알찬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사당을 갖춘 제사 공간, 사우정고택
사우정고택도 마찬가지로 이강이 물려받은 부속건물 중 하나예요. 애은당과는 다른 특징이 있는데, 사당을 갖춘 격식 있는 구조라는 게 눈에 띄어요. 담장으로 둘러싼 바깥마당을 들어서면 ㅡ자형 사랑채가 먼저 보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ㄷ자형의 안채가 있어요.
오른쪽 담장 모서리에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죠. 이런 배치는 조선시대 양반가의 위계와 제사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예요. 사랑채는 주인과 손님이 만나는 공간이고, 안채는 여인네들의 생활 공간이며, 사당은 조상을 모신 제일 신성한 공간이라는 뜻이거든요.
겉으로는 소박해 보이지만, 계층적 질서를 공간으로 표현한 선인들의 설계 철학을 보노라면, 집 한 채가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담은 역사책처럼 느껴져요. 마루 위에서 바라보는 마당의 풍경도 있고, 수백 년 된 목재 냄새도 있고, 누군가 살았던 생활의 흔적도 있어서—그냥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라, 시간 속에 들어가는 경험이 되는 거죠.
정문부의 별장, 강당으로도 쓰인 용계정
용계정은 세 건물 중에서 가장 '절경'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공간이에요. 임진왜란을 피한 문신 정문부가 1546년에 지었고, 1686년에 증축한 별장이거든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집으로, 강학과 휴식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건물로 설계됐어요.
실제로 이후에는 강당(지방 양반들이 학문을 나누던 공간)으로도 쓰였대요. 용계정 주변에는 수백 년 전부터 자라온 은행나무와 향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이 나무들이 그 시간의 증인이 되어주고 있는 셈이에요.
별장이라고 하면 요즘처럼 호사를 부린다는 의미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학문에 몸을 담그고 자연 속에서 정신을 닦는 공간이었거든요. 용계정에서는 그런 선비 정신이 가장 잘 느껴진다고 할 수 있어요.
조용한 마루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예전 선생님이 제자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덕동민속전시관과 함께 누르기
세 고택 외에도 덕동문화마을에는 덕동민속전시관이 있어요. 집성촌이 대대로 지켜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고택 투어만 해도 좋지만 전시관까지 둘러보면 마을 전체의 이야기가 한층 입체적으로 느껴질 것 같아요. 옛날 사람들이 입던 옷, 썼던 생활용품, 귀한 문헌까지—한 가족이 수 백 년을 어떻게 살아낸 건지가 눈에 들어온답니다.
덕동문화마을, 반나절 코스로 충분해요
기북면 덕동문화길에 자리한 이 마을은 포항 시내에서 30분~1시간 거리에요. 애은당고택, 사우정고택, 용계정, 덕동민속전시관을 모두 둘러봐도 반나절이면 충분해요. 걷기 좋은 날씨에 떠나면,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조선시대로 여행하는 기분이 든답니다.
마을 곳곳에 안내문도 잘 되어 있어서 길을 잃기도 어렵고요.
조선시대 선비의 삶과 철학이 남아 있는 마을이에요. 고택의 기와 위로 흐른 시간을 직접 마주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