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과 절의,
조선 선비를 배향한 연악서원
상주 지천동에서 만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시대

상주시 지천동에 위치한 연악서원은 박언성, 김언건, 강응철, 김각, 조광벽, 강용량 여섯 명의 선현을 배향한 조선 후기 서원입니다. 이 여섯 사람의 이름을 보면, 그들이 살던 시대의 흐름이 보여요. 효행, 의병, 절의라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핵심 가치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효행으로 이름난 두 선현
박언성은 12세에 할머니를 여읜 후 3년상을 마쳤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까지 사양할 정도로 효자로 유명했어요. 같은 맥락에서 김언건은 1511년부터 1571년까지 살면서, 1624년 효행으로 읍민이 정표할 것을 청할 정도로 뛰어난 효자였고, 감찰로 증직되었습니다. 이들은 극심한 시대 속에서 가정의 근본을 지키려 했던 선비들이었어요.
임진왜란 속에서 의병장이 되다
강응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상주를 지켰어요.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직접 나가 싸운 것입니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의 폭정에 분개하여 은퇴하고, 이후 독서와 저술로 일생을 보내며 학문의 길을 걸었습니다.
김각도 마찬가지였어요. 김언건의 아들인 김각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과를 올렸으니, 이는 아버지의 효행이라는 가치가 아들의 절의로 이어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조광벽은 류성룡(1542~1607)의 문인으로, 역시 임진왜란이 터지자 창의하여 공훈을 세웠어요. 류성룡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면, 그는 동인·서인의 분열기에 선조 임금을 보필했던 동인의 최고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문인 조광벽도 같은 뜻을 가져 전장에 나가 나라를 지켰던 것이죠.
병자호란 이후, 절의를 지키다
강용량은 강응철의 아들로, 병자호란 이후 의리를 지킨 인물입니다. 병자호란은 남한산성 항전으로 유명한 1636년~1637년의 사건인데, 이 전란 이후 많은 선비들이 절의를 문제 삼았어요. 강용량도 이런 시대 정신을 따라 절의를 지켰고, 이로 인해 공조참의로 증직되었습니다.
연악서원의 사당 창덕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1987년 서원을 복원할 때 지어진 건물입니다. 현재 여섯 선현의 위패가 이곳에 모셔져 있어요.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2칸을 어칸으로 하여 우물마루를 시공했고, 전면에 빗살 사분합문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천서당의 편액도 함께 걸려 있다는 것인데, 이는 서원 복원 때 재원 부족으로 강당을 새로 짓지 못하고 지천서당의 건물을 함께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효행과 의병, 절의로 이어진 여섯 선현의 시대. 연악서원을 걸을 때,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켜내려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느껴보게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