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가평 웹진양평 인사이드 · 2026-09-11 · 읽는 시간 3분

양평 사나사,
신라 고승이 머물렀던 용문산 자락의 천년 사찰

923년 창건, 고려 태고 왕사 보우가 중건한 통일신라의 정취를 간직한 고찰

양평 사나사, 신라 고승이 머물렀던 용문산 자락의 천년 사찰
양평·가평 현지 사진

양평군 옥천면 용문산 자락에 자리한 사나사는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천년 고찰이에요. 이곳을 찾으면 단순한 관광 차원을 넘어, 한국 불교사의 중요한 갈림길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이 사찰은 고려시대 고승 보우 왕사가 말년을 보낸 곳이라는 점에서 한국 종교사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답니다.

고승 대경대사가 용문과 함께 923년에 창건하다

양평 사나사
양평 사나사

사나사의 역사는 신라 경명왕 7년, 즉 9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고승으로 존경받던 대경대사가 자신의 제자 용문과 함께 이 자리에 사찰을 세우고, 5층 석탑과 노사나 불상을 조성했다고 전해집니다. 사찰 이름 '사나사'도 그 노사나 불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요.

신라 말기의 혼란스러운 시대에도 깊은 산중에서 신앙의 도량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사나사도 여러 번의 시련을 겪게 됩니다. 고려시대 공민왕 때인 1367년에는 태고 왕사 보우가 140여 칸의 규모로 중건하면서 사찰이 크게 번성했어요. 보우는 한국 불교에 '조계종'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고승으로, 선과 교를 일치시킨 통일종단을 창설한 인물이에요.

궁궐에 있기보다는 산중의 사찰을 택한 그가 말년에 용문산 소설암에서 입적할 때까지 보낸 곳이 바로 사나사였습니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견디고 오늘에 이르다

양평 사나사
양평 사나사

사나사가 겪은 수난도 한반도 역사만큼 무거워요. 1592년 임진왜란 때 사찰이 모두 불타버렸고, 16년 뒤인 1608년에야 단월 한방손의 재건으로 다시 모습을 갖추었어요. 그로부터 200년 뒤, 1907년에는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던 의병들의 근거지였다는 이유로 사찰이 다시 전소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1909년에 계헌이 대방 15칸을 복구했고, 1937년에는 주지 맹현우 화상이 대웅전 15칸을 재건했어요.

한국전쟁도 사나사를 피하지 못했어요. 1950년 6·25전쟁으로 사찰이 전소되었을 때, 1956년에 주지 김두준과 함문성이 협력하여 대웅전과 산신각, 큰 방을 재건했습니다. 이후 1993년에 주지 한영상이 대웅전과 지장전을 재건했고, 현 주지 화암 스님이 포교와 교육, 기도 도량으로 사찰을 일신했어요.

이렇게 무너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한 사나사의 역사 자체가 한반도의 근현대사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보물들

현재 사나사 경내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두 개의 귀한 유산이 있어요. 바로 원증국사탑과 원증국사석종비인데, 이들은 태고 왕사 보우의 제자였던 원증국사를 기리기 위해 1383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보우 스님이 1382년 용문산 소설암에서 입적한 후 제자 달심이 이를 추모하기 위해 부도와 비를 세운 것이지요.

천년의 세월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은 이 석조문화유산들은 고려시대 석공의 뛰어난 솜씨와 신앙의 깊이를 보여준답니다.

방문 안내

사나사는 양평군 옥천면 사나사길 329에 위치하고 있어요. 용문산 국민관광단지 근처라 찾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다만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사찰마다 개방 시간이 다를 수 있으니, 방문하시기 전에 현지에 미리 문의해보시는 걸 꼭 추천드려요.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개방 시간·휴무일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방문 전에 반드시 현지에 미리 문의해주세요.
한국 불교사의 굽이굽이가 담긴 용문산 자락의 천년 고찰.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방문할 만한 곳이에요.
#사나사#양평 사찰#용문산#고려시대 건축#문화유산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1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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