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왕의 기도가 살린 신흥사
임진왜란을 견디고 영축산 기슭에 우뚝 선 사찰의 전설

양산시 원동면 영축산 기슭에 자리한 신흥사는 오래되고도 신비로운 창건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임진왜란 당시의 피해를 상징하는 대광전만 남아있는데, 창건 당시에는 무려 110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어요. 역사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가야국 수로왕의 기도, 독룡을 쫓아내다
신흥사의 창건설은 정말 독특해요. 전설에 따르면, 만어사에서 기도를 하던 가야국 수로왕에게 부처가 나타나 말했다고 합니다. '양주 땅에 옥지(옥같이 맑은 연못)가 있는데, 거기엔 독룡(독이 있는 용)이 살고 있으니 이를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뜻이었어요.
수로왕이 정성을 다해 기도하니, 부처가 육신통의 주술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만어사의 돌들이 모두 고기로 변하여 옥지의 독룡을 동해로 쫓아버렸다는 거네요. 지금도 신흥사의 돌들을 두드리면 쇳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때 이후부터라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절을 지은 것이 지금의 신흥사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남은 것
신흥사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문헌을 찾아보면, 중종대까지의 연혁은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요. 다만 1582년에 성순이라는 승려가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신흥사는 승군의 거점이 되어 왜군과 격전을 치르다가 대광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습니다.
이후 영조시대에 만들어진 여지도서에 '신흥사는 군의 서쪽 육십 리 이천산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서, 임진왜란 이후에도 절이 계속 존속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10동의 건물에서 시작해 전란의 시련을 겪고도, 대광전을 중심으로 계속되는 신흥사의 삶이 정말 강인하다고 느껴집니다.
가야국의 왕이 기도한 자리, 임진왜란의 화염 속에서도 살아남은 신흥사. 전설과 역사가 겹쳐진 이 곳에서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정신을 느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