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웹진영주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2분

오계정사에서 시작된 오계서원의 450년 역사

수해와 폐철을 겪으며 지켜온 전통

오계정사에서 시작된 오계서원의 450년 역사
영주 현지 사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에 자리한 오계서원은 1570년 선조 3년에 이덕홍이 학문 연마와 심신 수련을 위해 건립한 오계정사(五戒精舍)에서 비롯됐어요. '오계(五戒)'라는 이름은 불교의 다섯 계(戒)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데, 유교의 서원으로 발전하면서 그 의미와 역할이 변했습니다.

임진왜란의 시련

오계정사가 건립된 지 22년 후인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터졌어요. 이 전란 속에서 오계정사는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절망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불과 3년 뒤인 1595년 선조 28년, 오계정사는 쌍계(雙溪) 언덕으로 이건되면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반복된 이건

하지만 오계서원의 역사는 이건의 연속이었어요. 1636년 인조 14년에는 홍수로 유실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강물의 흐름이 바뀌면서 서원이 침수 피해를 입게 된 거죠.

이후 지역 사림들의 공론으로 1665년 현종 6년 10월 2일에 도존사(道存祠)를 건립하고 이덕홍의 위패를 봉안했습니다. 그리고 1691년 숙종 17년에 오계서원으로 정식 승격되었어요. 1699년과 1707년에 또다시 대홍수를 겪었을 때, 서원은 또 한 번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물길이 바뀌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 1711년 숙종 37년에 오계서원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1724년 경종 4년에는 이덕홍의 장자 이시(李蒔)를 배향하면서 서원의 규모를 확대했습니다.

폐철과 복향

고종 시대인 1871년 고종 8년, 오계서원은 훼철되었어요. 근현대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많은 서원들이 그 역사를 잃게 되었는데, 오계서원도 그 중 하나였던 거죠. 하지만 이 또한 영구적이지 않았어요.

다시 1919년, 오계서원은 복향되었습니다. 그리고 1978년에는 도존사를 재건하면서 서원의 면목을 되찾게 되었어요. 이렇게 반복된 이건과 폐철, 복향을 거치면서도 오계서원은 450년이 넘는 역사를 지켜낸 셈입니다.

배향 인물의 의미

오계서원에 배향된 이덕홍과 이시는 조선시대의 주요 인물들이에요. 그들의 학문적 성취와 관직 경력은 이 서원이 단순한 지역의 한 시설이 아니라, 조선 후기 영주 사림 사회의 중심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도시전설 팁
방문 전에 영주시 관광정보나 평은면 안내처에 개방 현황을 확인해보세요. 서원 방문 시 문화재 보존을 위해 안내에 따라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수해와 폐철을 견디고 450년을 이어온 오계서원. 그 이름처럼 다섯 개의 경계를 넘어 오늘까지 전통을 지켜내고 있어요.
#오계서원#평은면#서원#조선시대#도존사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함께 둘러보면 좋은 지역전국 118개 지역 인덱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