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웹진부여 인사이드 · 2026-09-10 · 읽는 시간 2분

부여 송국리 유적,
청동기시대 삶을 되살리는 고고학적 보물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말해주는 선사시대 생활상

부여 송국리 유적, 청동기시대 삶을 되살리는 고고학적 보물
부여 현지 사진

부여 송국리 유적은 기원전 7~6세기에 농경과 수렵에 기반을 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에요. 초촌면 선사로변에 자리한 이 유적은 하천과 평지에 인접한 낮은 구릉과 대지 위에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치 과거의 마을이 그대로 잠들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발굴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유물들은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가늠하게 해줘요.

두 가지 형태의 집터가 말해주는 건축 기술

부여 송국리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

송국리 유적에서 발견된 집터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요. 먼저 둥근 모양의 수혈식주거지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 만들었는데, 한쪽 벽을 얕게 파 문을 냈던 것으로 보여요. 화덕자리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있었는데, 특히 바닥 중앙의 1m 내외 긴 타원형 구덩이 안에 여러 개의 둥근 구덩이를 만든 구조가 흥미로워요.

네모꼴 집터는 더욱 발달된 형태예요. 30cm 미만으로 땅을 판 반움집이나 지상식에 가까웠는데, 주춧돌이 있는 발달된 집 형태를 갖추고 있었대요. 기둥구멍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것만 봐도 당시 건축 기술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알 수 있어요.

토기·석기·청동 유물로 복원되는 생활상

부여 송국리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

집터 안에서는 당시를 알려주는 풍부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어요. 토기는 무문 토기, 붉은 토기(홍도), 검은간토기(흑도)가 발견되었는데, 특히 무문토기는 납작한 밑, 긴 달걀형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으로 이전과는 달라 '송국리식 토기'라 불린다고 해요. 돌칼, 돌화살촉, 방추차, 돌도끼 등 다양한 석기도 함께 나왔어요.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불탄 쌀과 벽체의 판자, 그리고 청동도끼 거푸집(동부용범)이 출토되었다는 점이에요. 청동도끼 거푸집은 부채날형 청동도끼의 틀로서 요령지역의 것과 닮았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 동아시아 교역이 얼마나 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랍니다.

한반도 최초의 무문토기 가마터

송국리 유적의 또 다른 의의는 집터 서쪽에서 한반도 최초의 무문토기 가마터가 확인되었다는 거예요. 비파형 동검, 붉은 간토기, 민무늬토기, 돌도끼, 대팻날, 끌, 돌낫, 돌검, 숫돌 등 다양한 출토유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알 수 있어요. 이러한 유물들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현장 방문 전에 부여군청 문화유산 부서나 관광 안내소에 미리 문의해주세요.
과거의 마을이 그대로 잠들어 있는 듯한 느낌, 청동기시대 선사인들의 생활을 직접 만나보세요.
#송국리 유적#청동기시대#고고학#부여 유적#역사 문화유산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0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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