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흘린다는 비석,
대제복구비의 설화
178년 전 저수지 복구의 공적을 기리던 석비에 얽힌 전설을 찾아보다
김제시 연정동의 조용한 거리에 한 개의 석비가 서 있어요. '대제복구비(大堤復舊碑)'라는 이름의 이 비석은 1848년 헌종 14년에 세워졌습니다. 김제군 지역의 가장 큰 저수지였다는 대제저수지를 복구한 사람들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인데, 이곳에는 단순한 역사 기록만이 아닌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가 살아 있습니다.
농경지를 살린 대제저수지의 복구
대제저수지는 김제 지역 농업의 생명줄이었어요. 저수지가 파괴되면 그 아래 농경지는 물을 잃게 되고, 이는 곧 지역민들의 생존 문제와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1848년 이 저수지를 복구하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노력을 기리기 위해 비석이 세워졌어요.
비석 앞면에는 복구 당시 총위사, 전라도관찰사, 어사, 김제군수 등의 이름이 새겨졌고, 이들의 공적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라는 글귀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조선시대 지방 행정과 민생 기반시설의 역사를 담고 있는 유산인 셈이에요.
설화로 기억되는 '피 흘리는 비'
하지만 대제복구비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유는 그 역사 자체가 아니라, 이곳에 얽힌 설화 때문입니다. '피 흘리는 비'라는 전설이 김제 지역에서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어요. 비석을 둘러싼 땅의 소유권 변화 과정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공적이 담긴 비석을 가벼이 여겼을 때 벌어진다는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설화에 따르면, 비석 뒤쪽에 있던 초가집의 주인이 자신의 집을 수리하면서 자기 땅에 서 있던 대제복구비 주변에 담을 둘러쳤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마지막 벽돌을 올려놓던 순간, 천둥이 치고 빗줄기가 내렸고, 그때 비석에서 피가 흘러나왔다는 거예요. 또한 집 안의 우물에서도 핏빛과 같은 녹물이 흘러나왔다고 전해집니다.
이 소문이 빠르게 마을로 퍼지면서 사람들은 비석 근처에 가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고, 이후 비석 앞 도로에서 원인 모를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 사람들이 다쳤다고 알려져 있어요.
사태가 심각해지자 결국 집주인은 담을 헐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설화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비석이 저주를 내린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담이 헐어지고 나자, 비에서 흐르던 피도 멎었고 우물에서 나오던 녹물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설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현대에까지 이어진다고 전해지는데, 요즈음도 가끔 비석에서 피를 흘릴 때가 있다고 하며, 비에서 피가 흐르면 그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난다는 말이 여전히 돌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이 비석이 왜 피를 흘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사연이 없습니다.
178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마을에서 속삭여지는 대제복구비의 설화. 역사 기록과 민간 전승이 얽혀 있는 이곳에서, 김제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