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장군의 전승이 모인 곳,
김제 사현사
1934년 건립된 봉성 온씨 문중 사당, 고대 역사를 품고 매년 추모하는 공간

김제시 금구면 선비로의 사현사는 언뜻 보기엔 조용한 사당입니다. 하지만 이 건물이 지어진 배경을 알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온달 장군과 온군해 장군이라는 고대의 영웅들이 있고, 그 후손인 온신이라는 고려시대 벼슬아치가 있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34년 지방 유림들이 세운 사당이 바로 여기입니다.
역사의 깊이와 문중의 정성이 만나 있는 공간을 만나보겠습니다.
온달 장군으로부터 시작된 인연
사현사가 모시는 인물들의 역사는 매우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온달 장군과 온군해 장군은 우리 고대사에서 전승되어 내려오는 영웅들이에요. 그리고 그들의 후손인 온신은 고려시대 공민왕 때 좌우길시랑이라는 벼슬을 지낸 인물입니다.
이 오래된 역사가 왜 김제, 그중에서도 금구면과 연결되었을까요?
온신은 공민왕 시대, 요승 신돈의 농정에 대해 왕께 아뢰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 결과 온신은 봉성(현재의 금구면)으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그 귀양살이가 인연이 되어 온신의 후손들이 금구면 산동리를 비롯한 이 일대에 살아가게 된 것이에요.
역사의 고난이 한 가문을 한 땅에 정착시킨 것입니다.
1934년, 유림들이 세운 추도의 집
사현사는 원래 대율리에 처음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1967년 대율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수몰되는 위기에 맞닥뜨렸어요. 그때 이 사당은 현재의 위치인 금구면 산동리로 옮겨 지어지게 됩니다.
물에 잠길 뻔한 문중의 사당을 새로운 터에 세운 것이죠. 이는 온신의 후손들이 이 땅에 얼마나 깊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사현사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사당과 하나의 강당 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온신을 중심으로 온림, 온윤, 온후를 모시고 있으며, 특별히 온달 장군과 온군해 장군의 단(제사를 지내는 위)도 함께 설치되어 있어요. 이는 가문의 역사적 깊이가 건축 공간에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매년 음력 9월, 추모의 시간
사현사는 단순히 역사의 흔적만 간직한 건물이 아닙니다. 매년 음력 9월 15일, 이 자리에서 봉성 온씨 문중의 추모제가 열립니다. 1934년 사현사가 지어진 이유도 「이 지방 유림들이 장군들의 업적을 오래도록 추모키 위해」였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거의 100년이 가까워오는 세월 동안, 이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온달 장군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거리가 매년 음력 9월 15일 이 사당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온달 장군의 이름이 고려시대 온신의 벼슬에, 그리고 1934년 봉성 온씨 문중의 사당에 계속 이어져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역사가 이렇게 하나의 장소에 켜켜이 쌓여있다는 걸 느껴봅니다. 김제 여행, 계속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