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웹진임실 인사이드 · 2026-09-11 · 읽는 시간 3분

임실 김복규·김기종 효자 정려비,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에 담긴 효의 정신

조선시대 효자 부자가 기리는 정려비, 꿈으로 아버지를 살린 아들과 3년 간 묘 옆에서 애통해한 손자의 이야기

임실 김복규·김기종 효자 정려비,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에 담긴 효의 정신
임실 현지 사진

임실의 효충서원 안에는 감동적인 효행의 이야기가 비석으로 남겨져 있어요. 김복규와 김기종 부자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가 세워진 이곳은, 단순한 문화재를 넘어 한 가족의 깊은 사랑과 효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에요. 특히 조선시대의 거장 서예가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로 더욱 유명한 이 정려비는 1885년에 이조참판 서유훈이 왕의 명을 받들어 건립했다고 해요.

조선시대 효 문화의 가치를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는 이곳을 소개해 드릴게요.

꿈으로 아버지를 살린 효자 김복규

김복규·김기종 효자 정려비
김복규·김기종 효자 정려비

정려비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김복규는 효심이 지극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불운하게도 16세의 어린 나이에 부친상을 당하게 돼요. 더 안타까운 건 아버지의 묘지를 정하지 못한 채 밤낮으로 슬픔에 잠겨 지내고 있었다는 거예요.

절망 속에서 밤마다 기도를 올리던 중, 꿈에 한 도사가 나타나 약을 구해 아버지께 복용하게 하라고 일러줬다고 해요.

김복규는 그 꿈을 믿고 도사가 말한 약을 모두 구해 아버지께 다려드렸어요. 그러자 놀랍게도 깊은 혼수 상태에 있던 아버지가 다시 깨어나 천수를 누리게 되었다고 해요! 이런 김복규의 지극한 효행 소식이 나라에까지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그에게 공조참판 동지금부사의 벼슬을 내려주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들의 효성이 죽음의 문턱에 있던 아버지를 다시 살려낸 셈이에요.

3년간 묘 옆에서 애통해한 손자 김기종

김복규·김기종 효자 정려비
김복규·김기종 효자 정려비

아버지의 효심을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그의 아들 김기종이에요. 김기종 역시 아버지에 대한 효가 지극하여 부모상을 당하자 무려 3년간을 묘 옆에 초막을 짓고 살며 애통해했다고 해요. 당시 그의 울음소리가 마치 호랑이의 울음소리와 같았다고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이를 보고 마을 이름을 호동(虎洞)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까지 있어요.

부와 자, 두 대에 걸쳐 나타난 깊은 효심의 이야기가 정말 가슴을 울려요.

추사의 글씨로 새겨진 효의 가치

효충서원 경내에 서 있는 정려비는 현재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형태로 조성되어 있어요. 비석의 앞면에는 각각 비의 제목을 세로로 새겼는데, 이 글씨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가 직접 썼다고 해요. 추사의 필체로 새겨진 글씨는 단순한 글자를 넘어, 효의 정신과 그것을 존경하는 마음까지도 함께 전달하는 것 같아요.

글씨 하나하나가 김복규와 김기종의 효행이 얼마나 존경받는 가치인지를 증명하고 있답니다.

효의 정신이 전하는 메시지

오늘날 효자 정려비를 바라보면,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라고만 느껴지지 않아요. 김복규는 부친상이라는 절망 속에서도 아버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김기종은 부모를 잃은 슬픔 속에서 3년간 변함없는 정성을 다했어요. 이런 효의 실천이 결국 후손들이 그들을 기억하고 존경하도록 만들었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효의 정신을 국가 차원에서 기리고 보상하는 제도까지 마련했을 정도로, 효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어요. 현대에도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 비석 앞에서 효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답니다.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효충서원은 역사 유적지이자 문화 공간이므로, 방문 전에 임실군 관광안내에 문의하여 현재 개방 상황과 참배 예절을 확인하시는 것을 추천해요.
조선시대 효의 정신이 추사의 글씨에 담겨 있는 곳이에요. 효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다면 효자 정려비를 찾아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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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1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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