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장수와 성리학자를 모시다,
남고서원의 역사
임진왜란의 영웅과 성리학의 거장이 함께 자리한 서원
정읍시 북면 보림1길에 자리한 남고서원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두 인물을 기리고 있는 곳입니다. 일재 이항과 건재 김천일, 그리고 이후에 추가된 여러 위인들의 학문과 절의를 추모하는 이곳은, 단순한 제사 공간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과 역사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에요. 선조 10년(1577)에 창건된 이래, 숙종 때 '남고'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된 서원입니다.
이항과 김천일, 두 인물의 선택
이항(1499~1576)은 조선 중기의 저명한 문신으로, 성리학에 깊은 조예를 갖춘 학자였습니다. 그는 학문의 길을 걸으면서도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절개를 지켰던 인물로 알려져 있어요. 한편 김천일(1537~1593)은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진정한 나라의 위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인물입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른 장수였던 거죠.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고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지만, 모두 나라의 앞날을 자신의 절의로 지켜내려 했던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서원의 확장과 변화의 역사
서원이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이항과 김천일 두 인물을 모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위인들이 추가로 배향되었습니다. 김점, 김복억, 김승적, 소산복 같은 인물들이 차례로 추가되었는데, 이는 서원이 단순히 고정된 제사 공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역사와 대화하는 살아 있는 공간임을 보여줍니다. 다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광무 3년(1899)에 다시 지어졌고, 이때 김점과 김복억, 김승적이 함께 배향되었으며, 1913년에는 소산복의 위패도 모셨습니다. 이런 변화의 과정 자체가 서원이 당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공간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어요.
건축 공간으로 보는 서원의 기능
남고서원의 경내에는 사우(위패를 모신 건물), 강수재(강당),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습니다. 사우는 앞면 3칸, 옆면 2칢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중앙에 이항의 위패를 모시고 그 좌우에 나머지 인물들의 위패가 있어요. 강당인 강수재는 앞면 4칢, 옆면 3칢의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꾸몄습니다.
가운데 2칢은 대청이고, 좌우에 방을 배치했으니, 제사 뿐만 아니라 학문을 나누는 공간으로도 기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곳에서는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나라의 위기 속에서 절의를 지킨 두 영웅을 추모하는 남고서원에서, 과거 그들의 결단을 생각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