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선현의 학문을 잇다,
옥산서원의 공간들
조선 시대 위인들의 덕행을 추모하는 서원, 옥산서원에서 역사를 읽다
정읍시 소성면 애당모촌길에 자리한 옥산서원을 소개합니다. 이곳은 의촌 김남식, 시은 김이성, 인일정 김성은 세 선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계승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에요. 조선 시대 서원이 그렇듯이, 이곳도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과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입니다.
옥산서원의 주인공들
김남식은 김집 선생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굴욕적인 화의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며 돌아와 계령산 아래에 살면서 집 이름을 '대명유계'라 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성절(節操)을 짐작할 수 있죠. 그의 아들 김이성은 송시열 선생의 문인이면서 효성이 지극했다고 전해져요.
김성은은 김이성의 증손으로 황의찬 문하에서 수학했고 『동국문헌록』 같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이 세 사람은 개인적인 덕행뿐만 아니라, 학파의 전승을 통해 조선 성리학의 맥을 이어간 중요한 인물들이었어요.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뉜 공간의 의미
옥산서원은 크게 세 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중심 영역에는 세 선현의 위패를 모신 사우와 강당인 옥산정사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강당 동쪽에는 고직사가 자리 잡고 있어요. 또한 강당 남서쪽에는 인일정의 영당과 삼강문이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있습니다.
각 건물은 서로 다른 시기에 지어지거나 중수되었지만, 전체적인 배치와 구조는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를 통해 제사와 강학이라는 서원의 두 가지 기능이 어떻게 물리적 공간에 반영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요.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건축물들
사우는 1956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중앙에 김남식을, 좌우에 김이성과 김성은을 모시고 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3칢의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어요. 강당인 옥산정사는 정조 10년(1786)에 개축된 후 1987년에 복원되었으니, 비교적 최근까지도 관리와 보수가 이루어져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일정 영당과 삼강문 역시 각기 다른 시기에 지어지거나 중수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어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에도 계속 보존되어 온 이곳을 방문하면, 조선 시대 학문과 제사 전통이 어떻게 현대까지 이어져 왔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선 성리학의 맥을 이어온 세 선현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옥산서원에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을 경험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