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부터 조선까지,
8대 왕조를 모신 유일한 전당 천진궁
영남루 경내 성스러운 공간, 민족 정통성의 심장

밀양의 영남루 경내, 천진궁(天眞宮)이 품고 있는 것은 단순한 건물 이상의 무게감입니다.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을 비롯해 8대 왕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이곳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공간이에요. 전국적으로 25개 지역에서 단군 영정을 봉안하고 있지만, 부여부터 조선까지 8대 왕조 시조의 위패를 모신 곳은 밀양의 천진궁뿐입니다.
이곳을 찾는 것은 건축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통성이 어떻게 지켜져 왔는지를 만나는 경험입니다.
8대 왕조를 모신 성스러운 배치
천진궁의 위패 배열은 정성스럽고 의미 깊습니다. 중앙에는 단군 영정을 시작으로, 좌측에는 부여, 고구려, 가야, 고려의 시조 위패가, 우측에는 신라, 백제, 발해, 조선 시대의 시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요. 이러한 배치는 단순한 시간 순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거쳐온 국가 형태와 그 정통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건물 자체는 정면 3칸, 측면 2칢의 단층 팔작 건축으로 주심포식 건물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대리석 기단 위에 높은 기둥을 세워 웅장한 위용을 자아냅니다.
천진궁에서는 음력 3월 15일 어천 대제와 10월 3일 개천 대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일 년에 두 번, 지역민과 전국의 유림이 모여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죠. 이러한 제사는 단순한 종교 의식을 넘어, 한민족의 역사와 정통성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문화 행위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수난과 해방의 복원
천진궁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말할 때, 일제강점기의 수난을 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일제는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역대 시조의 위패를 땅에 묻고, 이 건물을 감옥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민족의 최대 수난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밀양 선비와 지역민들은 이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옛 건물을 복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담은 행동이었어요. 오늘날 천진궁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민족의 정통성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며, 그것을 지키려는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입니다.
일제의 수난을 견디고 해방 후 복원된 천진궁. 이곳에서 만나는 것은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민족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끝없는 의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