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웹진남해 인사이드 · 2026-09-10 · 읽는 시간 2분

남해 금산 봉수대,
1,000년을 이은 불의 신호

고려 의종 때부터 조선까지, 서울로 연결된 제2 봉수로의 최남단

남해 금산 봉수대, 1,000년을 이은 불의 신호
남해 현지 사진

봉수(俸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 제도예요.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실시되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상 고려 중기부터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남해의 금산 봉수대는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제도의 산 증거입니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1,000년을 지켜온 불의 언덕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1147~1170 재위)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어요. 엄청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려 1,000년 가까이 불을 밝혀왔다는 것이죠.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 가운데서 동래(東萊)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 봉수로에 속한 최남단의 봉수였답니다.

이곳 금산에서 점화된 봉수는 창선 대방산을 통해 사천, 진주 등을 거쳐 서울에 전달되었다고 해요. 남해의 한 산봉우리에서 밝혀진 불이 수백 리를 거쳐 나라의 중심까지 전달되었다니,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적의 침입을 알리는 신호 체계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둔 산꼭대기 중에서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설치했어요. 그리하여 평시에는 불꽃이나 연기를 한 번 올리지만,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 번,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번,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번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고 합니다. 단순하지만 매우 효율적인 신호 체계였던 거죠.

해발 681m의 산 위에 세워진 돌의 기억

현재 금산 봉수대는 해발 681m인 금산에 자리 잡고 있어요. 둘레는 26m의 네모난 형태이며, 높이는 4. 5m이라고 해요.

이 돌덩이들이 1,000년을 견디면서 얼마나 많은 역사의 순간을 목격했을까요. 봉수대에서 내려다보는 남해 바다의 전망도 아름답겠지만, 그 이상으로 이 돌들에 새겨진 시간의 무게가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 같습니다.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개방 시간·휴무일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방문 전에 현지에 미리 문의하시거나 남해군 관광 안내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1,000년을 이은 불의 역사가 남아 있어요. 봉수제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0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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