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웹진남원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2분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남원읍성

1400년을 버틴 성곽, 그리고 남원성 전투의 기억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남원읍성
남원 현지 사진

남원에 가면 오늘날의 도시 계획이 과거 읍성의 흔적을 따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것이 남원읍성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읍성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동시에 군사적·행정적 기능을 함께하는 특별한 성입니다.

신라 신문왕 때인 691년, 남원 지역에 소경(지방도시)이 설치되면서 그 보호를 위해 네모난 형태의 평지 읍성이 지어졌어요. 이는 우리나라 읍성 중 가장 전형적인 구조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597년 남원성 전투의 비극

역사를 담은 성곽
역사를 담은 성곽

남원읍성이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시련을 맞은 것은 1597년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왜군은 다시 한 번 조선을 침략하려 했어요. 당시 왜군은 호남 지역 진출이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11만 대군을 이끌고 재침략을 감행했습니다.

적의 우군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려 했던 거죠. 조정에서는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했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비극이었어요. 중과부적 속에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이 분투 끝에 모두 순절하게 된 거죠. 그들의 죽음은 남원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은 그 희생을 기리기 위해 시신을 한 무덤에 모셨습니다. 1612년 광해군 때 충렬사를 건립했고, 지금도 그곳에서는 매년 9월 26일에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을 올리고 있어요.

성 자체의 규모도 대단했어요. 돌축대의 길이는 2. 4km가 넘었고, 높이는 약 4m에 달했습니다.

성 안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어 유사시를 대비했어요. 특히 주목할 점은 도시 계획의 설계입니다. 성 내에는 남북과 동서로 직선대로가 교차하고, 그 사이에도 너비가 좁은 직선도로가 교차하여 바둑판 모양의 도로 구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많이 허물어져 지금은 성터 모습만 남아 있지만, 시내 중심부의 도로는 여전히 바둑판 모양을 유지하고 있어요. 이것이 과거 읍성의 계획적 도시 설계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도시전설 팁
남원읍성 유적을 돌아다닐 때는 현재 남아 있는 성터와 도로의 관계를 함께 살펴보면 좋습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 과거 도시 계획과 남원성 전투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니, 사전에 신청해보세요.
1400년 전 신라 시대부터 지켜온 읍성, 그리고 1만여 명의 희생이 담긴 남원성 전투. 지금의 도로가 그 흔적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남원읍성#남원성#역사유산#정유재란#전쟁유적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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