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명찰,
역사 속에 사라진 고달사지
국보와 보물이 빚어낸 대가람의 위엄을 느끼는 곳

혜목산 자락에 자리한 고달사지는 한국 불교 역사에 깊은 자국을 남긴 대찰의 터입니다. 764년 통일신라 경덕왕 때 창건되었으며, 이후 1000년 이상의 세월을 거치며 고려의 가장 번영했던 사찰 중 하나로 성장했어요. 사방 30리가 절의 경역이었고, 머물던 승려만 수백 명이었다는 기록에서 그 규모와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려 삼대 사찰의 영광
고달사가 진정한 대찰로 성장한 계기는 신라 말 불교계의 변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새롭게 세력을 얻은 구산선문 중 봉림산파의 중심 사찰이 되었고, 봉림산문의 개산조인 현욱(787∼868)이 절을 중건하면서 면모가 달라졌어요. 이후 고려 원종 때 대사 찬유(869~958)가 이곳에 28년간 주석하면서, 고달사는 고려 3대 사찰로 손꼽히게 됩니다.
나라의 비호를 받는 대찰로서의 지위를 갖추게 된 것이죠.
그러나 언제 어떤 이유로 폐사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습니다. 대략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후반 무렵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에요. 한때 화려했던 대가람도 시간 앞에서는 무력했던 모양입니다.
남겨진 문화재들이 말해주는 것들
고달사지에 남겨진 유산들은 말 그대로 장관입니다. 절터에는 1개의 국보와 4개의 보물, 1개의 유형문화재 등 다수의 중요 지정문화재들이 있어요. 가장 거대한 고달사지 석조대좌(보물), 생동감 넘치는 귀부와 이수가 눈길을 끄는 원종대사탑비(보물), 고려 부도의 빼어난 균형미를 자랑하는 고달사지승탑(국보), 원종대사탑(보물), 거대한 돌그릇 석조 등이 현장에 남아 있습니다.
다만 원종대사 탑비는 1915년 봄에 넘어져 귀부와 이수만 현장에 두고 깨진 비신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어요. 깨진 조각들을 맞춘 본래의 비신은 여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고달사 터에는 귀부와 이수, 그리고 복제한 비신이 세워져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고달사지 승탑과 원종대사탑 뒤편에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여주상교리고려석실묘도 위치해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아요.
넘치는 힘과 호방한 기상, 화려하고 장엄한 기운이 분출하는 이 문화유산들은 진정으로 고달사의 위엄을 상상하게 합니다.
폐사되었지만 사라지지 않은 고달사. 이 터에 서서 만나는 국보와 보물들은 고려 시대 대찰의 위상을 생생하게 증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