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장군묘,
독립운동사 최대의 승리를 이룬 장군의 추모
청산리 전투의 승장, 노비 해방의 선각자
김좌진장군묘는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1889∼1930) 장군의 묘소예요. 김좌진은 아주 특별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에요. 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김좌진은 개화사상이 투철하여 겨우 15세 때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논밭을 나누어 주었어요.
이것만 해도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죠.
교육과 독립전쟁의 두 길
1905년에는 호명학교를 설립하여 문맹퇴치에 앞장섰어요. 문제는 당시의 정치 상황이었어요. 1913년에는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고난이 그를 꺾지는 못했어요. 1917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단에 가입한 이후 북로군정서의 사령관이 되어 독립군을 훈련시켰고, 이를 기반으로 청산리에서 일본과 전투를 벌여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승리를 이루었어요. 청산리 전투는 일본군 부대를 격파하고 많은 전과를 올린 사건으로, 한반도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어요.
신념 있는 죽음
조국광복을 위해 노력했던 장군은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암살당했어요. 이 사건은 국내 정치 갈등이 해외 독립군까지 영향을 미쳤던 당시의 비극적 현실을 보여줍니다. 암살 직후 만주땅에 묻혔다가 아내 오숙근 여사가 1940년에 유해를 비밀리에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안장했어요.
그 후 1957년 부인이 타계하자 아들 김두한이 현 위치에 합장했어요. 현재 묘역에는 뒤편으로 담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봉분은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어요. 봉분 앞에는 상석과 장명등이, 옆에는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말 석상 한 쌍이 세워져 있어요.
1989년에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어요.
노비 해방으로 시작해 청산리 전투의 승리로 이루어낸, 한 독립군의 삶. 그 숭고한 정신이 이곳에 담겨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