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웹진강진 인사이드 · 2026-09-10 · 읽는 시간 2분

강진 사의재저잣거리,
다산 정약용의 유배가 만든 창조의 공간

1801년 겨울부터 1805년까지, 주막 골방에서 탄생한 경세유표

강진 사의재저잣거리, 다산 정약용의 유배가 만든 창조의 공간
강진 현지 사진

강진의 강진읍 사의재길에 자리한 사의재저잣거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생산성 높았던 유배 시절의 무대예요. 1801년 강진에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처음 묵은 곳이 바로 이곳인데, 주막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나아가 우리 사상사에 영향을 미치게 된 장소라고 할 수 있어요.

사의재라는 이름에 담은 자기 수양

사의재저잣거리
사의재저잣거리

사의재는 이곳 주막집(동문매반가)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붙인 이름이에요.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해요. 다산은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고 합니다.

사의재라는 이름 속에는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경계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해요. 유배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자기 수양이 아니었을까요.

주막 할머니의 응원이 일궈낸 저술

사의재저잣거리
사의재저잣거리

사의재는 창조와 희망의 공간이었어요. 사려 깊은 주막 할머니가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이 말씀이 다산의 마음을 움직여 그는 자신이 편찬한 '아학편'을 주 교재로 교육을 베풀기 시작했답니다.

주막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던 그 4년 동안, 다산은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 조선시대 실학을 대표하는 저작들을 이곳에서 집필했어요. 한 주막의 골방이 한 사람의 사상과 시대를 바꾼 것이죠.

원형 복원된 동문안쪽 주막터

강진군은 오랜 고증을 거쳐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터를 원형 그대로 2007년에 복원하였어요. 현재는 동문매반가(주막)와 한옥체험관을 운영 중에 있어서, 다산의 유배 시절 삶의 일부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다고 해요.

이곳을 방문하면 단순히 역사적 장소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유배의 고통 속에서도 학문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지식인의 정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를 돌봤던 주막 할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역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방문 전에 현지에 미리 문의해주세요.
한 주막 골방에서 시작된 실학의 거대한 유산. 다산 정약용의 창조의 시간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사의재#다산 정약용#강진 문화유산#유배 지식인#동문매반가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0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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