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웹진임실 인사이드 · 2026-09-11 · 읽는 시간 3분

임실 상이암,
고려와 조선 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진 사찰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태조 이성계가 다녀간 천년의 영역, 성수산 위 조용한 절

임실 상이암, 고려와 조선 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진 사찰
임실 현지 사진

성수산에 자리한 상이암은 단순한 사찰이 아니에요. 이곳은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여러 주요 인물들이 발걸음을 옮겨 놓은 특별한 공간이랍니다. 신라 때부터 시작된 건립 이야기, 그리고 고려의 왕, 조선의 태조까지 이 절을 찾은 왕실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약 1,150년의 세월 동안 여러 번 고난을 겪으면서도 매번 중건되어 온 상이암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의 절

상이암
상이암

상이암의 시작은 신라 헌강왕 원년인 8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처음에는 도선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대요. 그 후 고려시대 태조 3년인 1394년에 각여선사가 증수했지만, 1894년 동학혁명 때 병화를 입게 되었어요.

다시 1909년 김대건이 중건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의병장 이석용이 이곳을 근거로 항일 운동을 펼친 여파로 일본군대에 의해 절이 불에 타버렸대요.

1912년 대원 스님이 재건했지만, 1950년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답니다. 이렇게 여러 번 화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1958년 당시 임실군수 양창현이 중심이 된 재건위원들이 다시 법당과 요사를 지어 오늘에 이르게 된 거예요. 이런 역사를 보면, 상이암이 단순한 건물의 재건을 넘어 한 지역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정신적 중심을 지켜나갔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왕실의 발길이 닿은 신성한 곳

상이암
상이암

상이암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건 고려와 조선 왕실과의 인연이에요. 『성수산 상이암 사적기』에 따르면, 894년에 고려 태조 왕건이 겨우 17세의 나이에 도선국사와 함께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고 다시 3일을 더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져요. 또 다른 전설로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을 1380년에 승리로 장식하고 개선하는 길에 이곳에 들러 3일간 치성을 드렸을 때, 천신이 내려와 '성수만세'를 세 번 외쳤다고 해요.

이후 조선 태조가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상이암은 단순한 종교 공간이 아니라,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이 얽혀 있는 성스러운 장소라고 할 수 있어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귀한 유물들

상이암 경내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썼다고 전해지는 '환희담(歡喜潭)'이라는 비석이 있어요.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썼다고 알려진 '삼청동(三淸洞)' 비석도 현존하고 있답니다. 이 비석들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역사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귀한 문화유산이에요.

또한 경내의 혜월당 부도와 두곡당 부도는 각각 국가유산자료 제124호와 유형국가유산 제15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어요. 이런 문화재들을 직접 마주하면, 마치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처럼 고려와 조선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사찰 방문 전에 현지에 미리 문의하셔서 예절과 방문 가능한 시간을 확인하고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해요.
한반도 역사의 흔적을 품은 사찰이에요. 고려와 조선의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상이암을 찾아보세요 🙏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1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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