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의견비,
주인을 구한 개의 충성을 기리는 기념비
원동산공원에 서 있는 의로운 개 무덤, 신라 시대 전설의 실체를 만나다

오수면사무소 인근 원동산공원에 세워진 의견비를 본 적 있으신가요? 이곳은 단순한 비석이 아니에요. 신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오수개의 전설이 실제 기념물로 남겨진 곳이에요.
개가 주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비석은, 195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해요. 오수라는 지명 자체가 이 개와 나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아시나요? 오수 지역의 뿌리 깊은 이야기를 찾아가 봅시다.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충성의 이야기
의견비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지사면 영천리에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개를 몹시 사랑해서 출타할 때마다 개를 데리고 다녔대요. 어느 날 주인이 시장에 다녀오면서 귀갓길에 술에 많이 취해 숲속에서 곯아떨어져 잠이 들게 되었어요.
그런데 때마침 산불이 번져 불길이 주인 근처로 다가오자, 개는 주인을 깨우려고 온갖 방법을 다해봤대요. 하지만 술에 깊이 취한 주인은 깨어나지 않았어요. 그러자 개는 절절한 마음으로 물속에 뛰어들어 온몸에 물을 묻혀 주인 주변을 수백 번 반복해서 왕복하면서 불길을 겨우 막아냈다고 해요.
그렇게 열심히 주인을 살리려다가 개는 지쳐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어요.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모든 상황을 짐작하고 개의 의로운 행동에 감탄한 나머지, 개를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무덤에 꽂아두었대요. 그런데 그 후 싹이 나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라났고, 그때부터 이 나무를 오수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마을 이름도 오수라고 부르게 된 거랍니다.
오(獒, 개)와 수(樹, 나무)를 합친 지명이 탄생한 거네요.
1955년에 재건된 기념의 공간
후세 사람들은 주인을 살린 개의 충성심을 잊지 않기 위해 의견비를 세웠어요. 하지만 오랜 세월의 풍파와 세월의 침식으로 글씨가 마멸되어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되었대요. 현재 원동산공원에 서 있는 의견비는 1955년 4월 8일에 새로 세운 것으로, 당시에는 비각을 세우고 주위를 단장하여 원동산공원을 만들고 일주문까지 세웠다고 해요.
비석의 글씨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가 썼다고 전해져요. 이렇게 역사적 인물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비석은 더욱 귀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개의 충성을 기리는 공간
원동산공원은 오늘날 오수 지역 사람들이 개의 충성과 의리를 추모하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의견비 외에도 동상이 세워져 있어서, 주인에 대한 개의 충성과 의리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신라 시대의 한 마리 개의 이야기가 어떻게 천 년이 넘는 시간을 견디고,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답니다.
단순히 관광지를 넘어서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에요.
신라 시대 개의 충성이 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남겨진 이야기예요. 의견비를 찾아 오수개의 감동을 직접 느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