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용문사,
신라 고찰의 정취를 품은 호국사찰
신라 시대부터 임진왜란까지, 승려들의 깊은 신앙과 나라 지키기의 역사

남해읍 이동면의 호구산 기슭에 자리 잡은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에요.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이 절은 열두 명의 고승을 배출한 남해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품어온 고찰, 용문사의 이야기는 고려에서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깊은 역사를 담고 있어요.
원효대사와 보광사의 전설
용문사의 창건 이야기는 흥미로워요.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보광사를 지었고, 산명도 보광산이라 한 이후, 호구산 첨성각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금산에 있었던 보광사를 이곳으로 옮겼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용문사는 바로 보광사의 후신으로 등장하는 사찰인 셈이에요.
다른 설화에 따르면 조선시대 현종 때, 남해현의 남해향교와 이 절의 입구가 맞닿아 있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해요. 이에 백월당 대사가 남쪽에 있는 용소마을 위에 터를 정하고 '용문'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합니다.
임진왜란의 호국사찰로서의 명예
용문사는 단순한 신앙의 공간을 넘어 호국사찰로서의 역할도 해냈어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승려들이 용감하게 싸웠다고 전해집니다. 그 증거로 용문사에 보관 중인 삼혈표라는 대포와, 숙종이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내린 수국사 금패가 있다고 해요.
조선 숙종은 용문사를 수국사(국가에서 호국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정한 사찰)로 지정하고, 왕실의 축원을 위해 경내에 축원당을 건립했어요. 연옥등, 촉대, 번 등도 하사했으나, 일본 강점기에 연옥등과 촉대 등은 없어지고 지금은 번과 수국사 금패만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시대를 초월한 신앙의 자리
신라 시대부터 현재까지, 용문사는 1,000년 이상을 신앙과 호국 정신의 상징으로 존속해왔어요. 절의 정취 속에서 고려 말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 왕조를 건설한 시대의 이야기도 들리고, 임진왜란의 창칼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는 듯합니다. 이 사찰을 찾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한반도의 신앙과 역사가 만나는 깊이 있는 경험이 될 것이에요.
신라 고찰의 정취와 호국 정신이 남아 있어요. 천년의 신앙을 만나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