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웹진완도 인사이드 · 2026-09-11 · 읽는 시간 2분

완도 청해진 유적,
신라 해양 무역을 주도한 장보고의 해상 기지

간조 때만 닿던 장도의 성, 1,200년 전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중심

완도 청해진 유적, 신라 해양 무역을 주도한 장보고의 해상 기지
완도 현지 사진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 장도. 이곳에 신라 흥덕왕 3년, 즉 828년에 장보고가 설치한 청해진이 있었어요. 해군기지이면서 동시에 무역기지였던 이곳은,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다고 해요.

요즘 말로 하면 동아시아의 '허브 항구'였던 셈이에요. 장도까지의 거리는 약 180m쯤 되는데, 예전엔 간조시에만 바닥이 드러나 걸어갈 수 있었대요. 지금은 2009년에 설치된 장도목교 덕분에 누구나 자유롭게 탐방할 수 있답니다.

계단식 성이 남긴 1,200년 전의 모습

장도의 성터
장도의 성터

청해진이 있었던 장도의 흔적은 꽤 선명해요. 섬 전체에 계단식으로 쌓인 성의 모습이 남아 있으니까요. 또한 1만 명이 마실 물을 공급했다는 '청해정'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맑은 물이 솟아난다고 해요.

그뿐 아니라 토성의 일부와 기와 파편 등도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 바다의 수심이 얕다는 거예요. 청해진의 설계자들이 이 지형을 이용해 방어용 목책을 박아 외부 접근을 차단했다고 하니, 천연의 요새에 인공의 방어선을 더한 셈이에요. 고대 군사 전략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에요.

태풍 사라가 벗겨낸 1,000년의 시간

계단식 성
계단식 성

청해진이 언제부터 현지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까요? 1959년 태풍 사라호의 영향으로 갯벌이 깎여 목책이 드러났다고 해요. 그때부터 청해진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자연의 힘이 또 다른 발굴의 손이 되어준 셈이에요.

현대에 들어 장도는 완도 주민들이 농사를 짓던 땅이었는데, 태풍은 그 흙 아래 감춰진 신라의 비밀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놓았던 거네요.

장보고, 한민족 최초의 해양 무역왕

청해진을 만든 장보고는 누구였을까요? 완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당나라로 건너가 30세에 무령군 군중소장이 되었다고 해요. 흥덕왕 3년 완도로 돌아와 청해진을 설치한 후,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권을 장악했어요.

아랍상인과도 교역할 만큼 국제적인 무역 네트워크를 펼쳤다니, 정말 한민족 최초의 세계인이자 해양상업제국의 건설자였던 셈입니다.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개방 시간·휴무일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목교를 통해 출입이 가능하니, 방문 전에 현지 안내를 확인하고 안전한 신발을 준비해주세요.
신라의 해양 제국이 숨 쉬던 섬이에요. 바다 위의 역사 위에 서봐보세요 ⛵
#청해진#장보고#신라#해양 유산#완도 역사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11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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