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임진왜란의 마지막 승리를 담은 섬
고금도 앞 작은 섬에 남겨진 충무공의 흔적, 1,400년이 지난 지금도 풀이 자라지 않는다는 전설
완도 고금도 앞 바다에 떠 있는 묘당도(妙堂島). 이 작은 섬은 1598년 충무공 이순신이 8,000여 명의 수군을 이끌고 마지막 진을 편 역사 현장이에요. 한산도에서 물러난 후 더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본영을 건설했던 이순신은, 명나라 진린 장군의 5천 명 수군과 연합하여 왜군의 침략을 막아내는 전술을 펼쳤다고 해요.
지금 그 흔적을 찾아 묘당도를 밟으면, 400여 년 전 해전의 함성이 들려올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임진왜란, 그 마지막 희망이 깃든 섬
1598년 2월 17일, 충무공 이순신은 고하도(현재의 목포)로부터 묘당도로 함대를 옮겼어요. 당시 전란으로 피난을 떠났던 민간인이 수만 호에 달했다고 기록되는데, 이순신은 전투만 아니라 이들을 거두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7월엔 명나라 원병의 진린 장군이 5천 명의 수군을 이끌고 도착했고, 두 나라의 수군이 연합 전선을 펴 동해 해역을 장악했어요.
특히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요새였는지는 결과에서 드러났어요. 묘당도의 강력한 군세에 위압받은 왜군은 더 이상 장흥과 고흥 지역에서 살육을 일삼지 못하고 순천 방면으로 도주해버렸거든요. 9월 15일엔 순천 수교에서 침몰한 왜군을 소탕했고, 10월엔 다시 고금도로 돌아와 전열을 정비했습니다.
그리고 11월 19일, 노량 해전에서 충무공이 순국하셨어요.
역사가 응축된 작은 섬의 기억
충무공이 순국하신 후 유해는 88일간 묘당도에 봉안되어 있다가 다음해인 1599년 2월 11일에 정식 발인되어 고향인 충남 아산의 묘역으로 옮겨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지금도 이 터에선 풀이 자라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는 거예요. 더욱 감동적인 건 명나라 진린 장군마저 장군의 전사를 애석히 여겨 이곳에서 서혈하고 귀국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관왕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충무사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우리 역사의 자부심이 서 있는 섬이에요. 조용한 바다 위에서 충무공의 시대를 마주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