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향교,
고려 공민왕 때부터 배움의 정신을 지킨 600년의 학교
정종 임금도 참고했다는 배치, 임진왜란의 불길도 견뎌낸 조선의 교육 기관
영광읍 향교길에 자리한 영광향교는 650년을 훨씬 넘은 시간을 한 자리에서 견뎌온 건축물이에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지어졌다고 하니, 이 나라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는 큰 변화의 시간까지 고스란히 겪으며 서 있었던 거죠.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한반도 교육 정신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임진왜란의 불과 세월을 견딘 학문의 터
영광향교는 선조 15년(1582)에 수리되었는데, 임진왜란(1592)이 터지면서 불타 없어지고 말았대요. 하지만 이 마을의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다시 복원했고,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하니, 세대를 거치며 계속해서 배움의 정신을 이어간 것 같아요.
전묘후학의 배치, 정종 임금도 참고한 구조
현재 영광향교에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서재 등이에요. 앞쪽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공간을 두고, 뒤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배움의 공간을 두고 있는데, 이를 전묘후학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향교 배치의 일반적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정말 흥미로운 건 그 반대 방향이에요.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정종 2년(1400)에 불에 탄 서울 문묘를 복원할 때 이 향교의 배치를 참고했다고 한대요. 지방의 작은 향교가 나라의 중심 문묘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영광향교가 얼마나 잘 설계되고 아름다웠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국가 교육 기관에서 향촌 정신의 보루로
조선시대 향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요한 교육 기관이었어요. 하지만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이 사라지고, 지금은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고 해요. 현재 영광향교는 오직 명령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지방 사회가 어떻게 학문을 지켜내려 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어요.
고려에서 조선으로, 춘추를 이어가는 650년의 배움의 전통. 영광향교에서 그 정신을 만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