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서곡정사석조약사여래입상,
고려시대 약사불 조각
쌍용사 터에서 옮겨진 하나의 돌로 조각된 보물
영월군 한반도면 깊숙이 자리한 서곡정사에는 고려 시대부터 이어진 불상이 하나의 돌에 조각된 채 보관되어 있어요. 이곳의 석조약사여래입상은 현대에 발견된 것이 아니라, 원래는 다른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1980년경 광산 개발로 인해 원래 있던 쌍용사 절터를 떠나 서곡정사로 옮겨진 이 불상은, 마치 역사가 먼 옛날부터 이곳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쌍용사 절터에서 옮겨진 고려 약사불
이 석조약사여래입상은 원래 '쌍용사'라고 불리던 절터에 있었어요. 하지만 1980년 무렵 광산 개발이 시작되면서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현재의 서곡정사로 옮겨졌습니다. 불상을 옮기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고려 시대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불상이 옮겨진 이후 서곡정사는 이 귀한 약사불을 모시는 사찰로 새로운 역할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약사불은 불교에서 '의약의 부처'로 알려져 있습니다. 병고에 시달리는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라는 뜻이에요. 따라서 이 약사불상이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당시 사람들이 건강과 치유를 기원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정교한 조각 기술이 돋보이는 불상
이 석조약사여래입상의 가장 특이한 점은 불상과 광배(光背·불 뒤의 후광을 나타내는 부분), 대좌가 모두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목이 짧아 약간 움츠린 듯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비례가 좋은 편이에요. 민머리의 정수리 부분에는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 위의 작은 머리)가 높게 솟아있습니다.
둥근 얼굴에는 양감이 풍부하며, 시간이 지나 눈과 입 부분이 다소 마모되었지만 얼굴의 전체 모습은 여전히 알아보기 좋은 상태입니다.
불신이 두껍게 도드라지게 조각되어 있어 어깨의 양감까지 온전하게 드러나 있어요.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몸 전체를 덮고 있는데, 옷의 두께가 두꺼워 신체의 곡선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목에서 한 번 반전된 옷은 가슴부터 발목까지 U자형을 그리며 흘러내리고 있으며, 일정한 간격의 옷 주름은 굵고 투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왼손은 배 앞에 대고 손바닥을 위로 향해 커다란 약그릇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안쪽으로 하여 허벅지 위에 두고 있는 자세입니다. 이런 섬세한 표현 방식들은 고려 시대 조각 기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안정감 있는 광배와 대좌의 형태
불신 뒤의 광배는 위가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따로 구분하여 새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오랜 세월로 인한 마모로 인해 구체적인 세부사항은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대좌는 2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엎어 놓은 연꽃무늬(복련)와 활짝 핀 연꽃무늬(중련)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광배와 대좌의 크기가 불신에 비해 커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뛰어나며, 이는 고려 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려 미술사에 중요한 자료
높고 커다란 육계, 양감이 풍부한 얼굴,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불신, U자형의 옷주름과 각선(刻線), 그리고 안정감 있는 광배와 대좌의 형태 등 여러 특징들을 종합할 때, 이 불상은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강원도 지역에서는 매우 드문 약사불입상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중요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방문 전 알아두세요
서곡정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한반도면 용정원길 86-17에 위치하고 있어요.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고료 시대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싶으시다면, 방문 전에 반드시 현지에 미리 연락해 개방 여부와 관람 규칙을 확인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고려 시대 조각의 정취를 한 덩어리 돌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영월의 깊은 문화유산을 경험해보세요 🙏




